'학교 다니기 X팔리다 페미들아', '이름 까고 말해', '진짜 피해 망상증'…
최근 인천 한 중학교에 교내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대자보가 붙자 쏟아진 혐오 표현이다.
'우리들의 외침을 들어주세요'라는 대자보 제목 밑에는 '꺼져. 이름 까라'는 문구가 검정 사인펜으로 적혔다.
대자보는 '특정 젠더의 신체를 품평하거나 외모를 무차별적으로 비하하고 수업 시간에도 성적 언행이 아무렇지 않게 이뤄진다'고 지적했지만, 그 밑에는 '학년, 반, 번호를 까라'거나 '할 말 있으면 랩으로 하라'는 조롱만 줄줄이 달렸다.
스쿨 미투를 고발한 학생들이 되려 교내 언어폭력과 신상털기에 시달리는 2차 가해가 벌어지고 있다.
11일 인천시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9월 시작된 인천 내 스쿨 미투 폭로는 5개 중·고등학교로 늘어났다.
시교육청은 사태가 커지자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중구 A 고등학교와 부평구 B 중학교 전교생을 설문 조사했고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 50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새로운 스쿨 미투가 나오지 않으면서 사태가 잠잠해지는 듯했지만 미투가 제기된 학교에서는 심각한 내부 갈등이 계속됐다.
B 중학교에서는 스쿨 미투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교내에 게시된 고발 포스트잇과 대자보를 구기거나 떼서 바닥에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연수구 C 중학교에서 스쿨 미투를 고발한 한 학생은 계속되는 언어폭력에 '(특정 학생들은) 쉬는 시간마다 이곳에 와서 '메갈X', '쿵쾅이', 'X신' 등 무례한 언동을 일삼았다'며 고통을 호소하는 대자보를 붙이기도 했다.
이 학생은 '여러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고소 방법을 찾고 피고소인을 선별했다'며 2차 가해가 계속될 경우 고소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민주적이고 경직된 학교 문화 아래 비슷한 문제는 되풀이되고 있다.
올해 7월 13∼16일 서울시교육청에는 청소년 페미니스트에게 가해지는 학교폭력을 처벌하고 이들이 안전하게 활동할 수 있는 학교 환경을 조성해달라는 내용의 민원이 78건 접수됐다.
초·중·고등학교에서 혐오 표현에 불편함을 나타냈거나 페미니즘을 옹호했다는 이유로 신체·언어폭력을 당한 학생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같은 시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청소년 페미가_겪는_학교폭력'이라는 해시태그로 청소년 페미니스트가 당한 학교폭력 사례를 기록하는 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이들은 여성 혐오 표현을 쓰지 말자는 대자보를 교내에 붙였단 이유로 다른 학생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는 등의 심각한 폭력 사례를 털어놨다.
이러한 고질적 문제는 아이들이 자기 생각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 장을 학교가 만들지 못하면서 반복된다고 전문가는 지적했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대표는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대자보를 찢거나 욕을 하는 건 그냥 남의 입을 막아 버리는 반민주적인 행태"라며 "많은 학교는 이런 행태가 학생 간 갈등에 불과한 양 방치하거나 조장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스쿨 미투가 제기됐다면 그 원인과 구조적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데 학교는 '명예를 실추시킨다'거나 '다른 애들이 공부를 못 한다'며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인식을 갖고 대응하니 나머지 학생들도 의견을 민주적으로 표현하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다"고 덧붙였다.
스쿨 미투가 교내 성폭력과 성차별적 문화에 더 이상 순응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인 만큼 이를 통해 학생들에게 민주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가르칠 수 있다고도 조언했다.
김 대표는 "오히려 이런 사태는 성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정신 나간 혹은 과민한 사람으로 치부하려는 행동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교육할 수 있는 기회"라며 "앞으로 학교라는 공동체가 용기 있는 고발에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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